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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IT를 접으며.



20년 가까이 IT쪽에 일을 해오고 있다.

대기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이듬해에 IMF를 맞았다.


주변 연구단지의 연구소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같이 받던 분이 인사 책임자였는데 IMF로 토론하자 문을 박차고 나갔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자기 손으로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을 바꿔 잘나가는 외국계 한국지사를 한 일년 반을 다녔다.

전세계적인 IT 거품이 한국에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새롬이란 벤처 주가가 5개 재벌의 시가 총액을 넘어선다는 기사가 나던 때였다.


엔지니어 몸값이 하늘 높이 뛰고 스포츠 시장에서나 불던 이적료도 있었고 주식으로 유혹하던 때였다.

너무 일찍 돈 맛을 알아버린 것인지 그 좋은 곳을 뛰쳐나와 벤처로 옮겼다.

주임, 선임, 책임이 사천, 오천, 육천 하던 때였다. 딱 2000년이었나 보다.


그 벤처에서 직원들이 사장을 몰아내고 회사가 이상해졌다. 대주주는 따로 있었다.

SW 팀이 따로 나와 회사를 차렸다.


이웃나라 중국이 있었고 아직은 기술이 부족하던 때라 한국 기업에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지던 시기였다.

처음 만든 회사의 주주였고 직원이었다.

주식이 많은 것이 바로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다.


이년만에 사장님이 잘나가는 회사를 한 번에 말아먹었다.

수출 대금을 선배 회사의 어음으로 받았다가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이었다.

엔지니어가 바로 사장이 되면 어떤 위험이 있는지를 알았다.

남은 것은 침몰한 배에서 뛰어 내리며 이후 지저분한 소송 등으로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헤어질 때도 도리가 있는 법인데 서로가 이별을 준비하기엔 너무 이른 때였다.


이때가 많은 엔지니어들이 대기업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나도 벤처의 꿈을 접고 대기업으로 복귀하려 했다.

약간의 반골 기질이 있어 대기업이 적성에 맞지 않아 망설임이 패착이 되었다.


한국은 절대 미국과 같은 IT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이후 벤처에서의 생활은 암울했다.


업무 특성 상 해외 현지 개발을 위해 장기 출장이 많았다.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오래 있었다.


젊은 시기에는 좋았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치명적이었다.


내가 발을 디디고 사는 이 사회에 뿌리 내릴 시간이 없었던 노마드의 삶이었다.

현지에서는 밤낮없이 개발만 하다보니 일한 기억 뿐이었다.

회사는 단지 명령을 잘 따르고 이동성이 뛰어난 사람이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것 뿐이었다.


모바일쪽에서 한국이 얼마나 취약한 것이지 차츰 깨달아갔다.

SW의 두뇌인 운영체제는 100% 의존이고 HW의 코어인 CPU도 마찬가지였다.


2014년 지금이야 삼성이 타이젠을 만들고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나마 데이터베이스나 미들웨어에 약간의 싹은 있지만 한국은 기본적으로 세트 산업인 것이었다.

SW도 핵심은 수입하고 잘 조립할 수 있는 수준의 엔지니어가 필요한 것이었다.


세상은 한국보다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브릭스의 인도와 중국이 순식간에 따라왔다.


이제는 을이 되어 대기업 파견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많은 인도 프로그래머가 삼성과 엘지에서 근무하게 된 것이다.


저정도 고급 인력이 나보다 1/10의 연봉만 받고 근무하는데 내가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

웬만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이런 고민하고 다음 갈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며 발버둥치며 근근히 몇해를 더 버텼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을로 일하며 생존을 위해 갑보다 일찍 와서 늦게까지 일했다.

업무 지시를 하던 갑이 나랑 일하기 힘들다고 회사에 알려버린 것이다.


음, 일보다 말을 잘 들어야 했는데 한 두어번 따지고 들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보통 업무를 줄 때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달라고 한다.

그런데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키길래 이런 저런 위험이 있다고 했다. 물론, 기분 좋게 말하지는 않았다.


본사에서 소장이 왔다.

일단은 철수하고 내 자리는 다른 인력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했다.

아마도 정리해고나 권고사직의 최우선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래 저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잊고 있었던 지난 시간이 찰나간에 복기가 되는게 신기했다.


모 전자에 FA로 일할 때였다. 그때가 12년 경력이었나 보다.

3년 경력의 갑이 한마디 했다.

"일 잘하시네요. 회사에 잘한다고 전화 한 번 드릴까요?" 정도의 멘트였다.

웃으면 그 마음만 받겠다고 했던가...


지금 그 때가 생각나는 건 뭘까?

갑과 을이 함께 일하면 묘한 분위기가 있다.


일은 서로 많다.

똑똑한 회사는 을에게 중요한 핵심 업무는 주지 않는다. 최근엔 기술유츌이 심하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있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모자라는 회사는 자주 을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시킨다.

지금 있는 곳은 물론 후자의 경우다.


언젠가 친구가 IT를 떠나며 한 말이 있다.

자기 팀장이 한 살 적었는데 극복이 안되는 것들이 많아서 떠난다고 했다.


나도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서는데 몇 년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어학쪽에 준비한 것이 있어 대안을 세워야겠다.


3D + 1 = 4D, dreamless한 IT를 접었다.


바닥에 다다르면 그제야 올라갈 수 있다.

판도라의 희망이 모기같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세운다.


취~ 어쩌라고?


-- IT를 막 살아온 댓가를 치르고 있나보다.